청교도는 기존의 카톨릭 전통을 부정하고 엄격한 도덕과 금욕, 향락 금지, 사치 금지 등의 생활을 주장하고 실천하는 신도들의 종교였다. 청교도 사람들은 영국에서 박해받고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는데, 이 소설에 나오는 매사추세츠의 보스턴도 그 중 한 시가지이다.
모든 생활에서 도덕적 종교적으로 철저하기로 유명한 청교도들은 교회 개혁을 통해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전 국민의 삶에 확산시키려고 노력했다. 그 후 영국에서 밀려나오면서 청교도적 생활 방식을 실천하고 응용하는 모델로 미국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었다.
청교도주의는 18세기에 접어들자 차츰 쇠퇴했다. 18세기 말에 이르거 서부로의 진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청교도주의는 변해 갔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상이 그들을 지배하여 청교도주의의 독선적인 경향을 사라졌다. 그리고 서부의 개척 정신, 쾌활한 낙천주의 덕택에 청교도의 지나치게 비관적인 태도는 점차 사라져 갔다. 광대한 서부의 새로운 정신 밑에 청교도주의의 모습도 달라졌다. 결국 종교적 신아으로서 국민들 사이에 그 세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청교도주의의 중요한 요소인 근면, 극기라는 도덕이 곧 개척 정신의 기본적인 요소가 되었다. 또한 죄의식과 선악에 철저한 정신이 개척정신의 정의, 정직, 공정, 용기 등의 도덕으로 이어졌다. 선악을 표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도덕적 습관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와 같은 도덕적 관념은 오늘날가지 미국인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호손과 다른 미국 작가들의 훌륭한 작품은 바로 이 '죄의식'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1804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세일럼에서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호손은 그의 나이 4세 때ㅔ 아버지를 잃은 후 친척 집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9세때 다리를 다쳐 3년 정도 외출을 못하고 누워 지냈던 적이 있는데, 이 때 부터 독서광이 되었다고 한다.
17-21세까지 보드윈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펜쇼>라는 처녀작을 자비로 출판하였다.
그는 1864년 죽을 때 까지 경제적으로 늘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여러 편의 잡문을 써서 익명으로 출판하기도 하고 책의 편집을 맡아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종종 몇 년씩 세관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는데, 거기서 친구들의 후원이 큰 도움이 되었다. 소설가로서 공직에 근무하기도 힘든 일인데, 호손의 소설을 읽으면 인간 심리 묘사의 섬세함과 풍부함에 매료되어 정말로 공무원 일을 했는가 의심이 갈 정도이다.
세무 관리 시절, 정권 교체와 더불어 해직된 호손은 부인과 자녀를 부양할 길이 막막해졌다.
<주홍 글씨> 는 1850년에 발표한 호손의 최대 걸작으로 그가 이런 시련을 겪고 있을 무렵 씌어진 것이다.
<주홍 글씨>는 현대 문학사에 이르기까지 손꼽히는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이 작품을 쓴 호손의 문학적 명성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호손 자신이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가 지배하는 집안에서 자란 탓에 그의 작품 세계는 도덕적 죄악에 빠진 사람들의 고독한 심리를 묘사하는데에 특히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주홍 글씨> 외의 작품으로는 <일곱 박공의 집>, <블라이스데일 로맨스>, <대리석의 목신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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